낭만주의
빅토르 위고 -
테오도르 제리코 [말을 타고 공격하는 황제 근위대 장교] 1812
극적효과 창출, 1814 살롱전 ‘ 마상초상화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
-불안정한 말의 뒷모습
-채색과 선이 부족,
-기병장군의 진격명령 당시 생동감 표현, 사실적 표현, 승리에 대한 확신이 부족, 불안감
-말 ; 화염에 놀라 앞발을 든 상황묘사, 사실적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갯길을 지나는 보나파르트 1800
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33세 요절
-초상화: 시인처럼 묘사/ 왕실 기병대 장군/ 낙마로 사망
1810-1812 [말습작]
-동물적인 에너지, 야성적
-인간이 걷잡을 수 없는 선의 매력
1814[전장을 떠나는 부상당한 중기병] -2번째 살롱작
-1814 :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미래에 대한 불안감 느꼈던 시대(동시대적 사건, 비영웅적 인물, 직접적인 메세지x, 경험으로 느껴지는 감정)
-패배감, 무기력함 연출 > 색채로 표현,
-구성: 말과 인물의 크기가 화면에 비해 크다 > 억눌러진 느낌
제리코 -프랑스 낭만주의 1세대
1818-1819 [메뒤즈호의 뗏목]
-서정적x ,낭만주의 대표작(미술사에서의 ‘낭만’의 의미)
-왕정보고 시기(restoration) : 부르공 왕가 복귀 - 귀족 <-> 신흥 세력 간의 첨예한 사회갈등시기( 토지, 건축물 소유주, 관직복귀)
-메뒤즈호 사건 : 1816.7 뒤르아드 쇼마레 망명지에서 복귀, 해군장교로 복귀(선장경력 x)하고 메뒤즈호를 이끌고 프랑스 이주민 식민지인 세네갈 가는길에 배가 좌초하고 자신만 탈출한다. 150명을 수용한 똇목과 연결된 밧줄 끊고 구명보트를 끌고 탈출. 남아있는 사람들 15일동안 표류하고 15명만 생존하게 되는 사건. 사건후에 뒤르아드 쇼마레에 대한 경미한 처벌로 사비니 의사와 꼬레아 엔지니어가 사건을 재고하면서 되고 무능력한 왕당파와 귀족을 비판한다.
-뗏목 위에서의 생존투쟁 > 좌절된 희망 (습작> 최종작)
-삼각형 구도: 뗏목의 돛과 파도/ 구조선에 신호하는 사람들 : 전체적인 결집이 필요(전형적인 삼각형 구도와 달랐음)
-앞인물들 , 죽은아들을 잡고있는 노인 : 정면 묘사
-삼각형 구도: 명암의 대비(극적효과 강화)<—> 동등한 빛 : 역사의 소용돌이 위에서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망함, 개인적 영웅적 사회x
-그림전반에 시대상황에 빗대어지는 허탈감, 좌절감 : 의지적 세계관이 나타나지 않음( 균형잡혀 있고, 의지적인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담고 잇는 다비드의 작품들과 비교)
[습작]
-시체들을 스케치, 당시 그려졋던 인체묘사와 달라진다. 색채에서는 초록색, 푸른색을 띄고 비틀어진 자세 등이 표현된다. 어떠한 영적인 의미는 담고 있지 않다. 역사 속에 표류하는 프랑스 개인들의 모습이 담겨진다.
왕정보고시기
신고전주의를 추종하던 세력,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낭만주의를 새롭게 추종하던 세력이 갈등. 다비드의 제자들이 주류로 아직 활동하던 시기.
제리코는 평생 3개의 작품을 공개,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었고 본인이 즐겨 그림을 그렸다.
1822-23 [광인의 모습]
-개개인의 상실감을 담은 작품이 많다. 동시대를 구현하고 있음. 감정을 절제하려는 신고전주의와 반대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함. 직접적인 경험을 중시여겼음.
*들라크루아, 제리코의 동료로서 영향을 받음, 일기 출팜
: 동료로서 비슷한 구성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낭만주의파와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메뒤즈호의 뗏목]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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