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gène Delacroix (1798-1963)
1798 4월 출생
1816 에랭의 아뜰리에/ 다비드의 유파가 아니였음
1822 살롱전 첫 작품 [ 단테의 조각배]
1824 살롱전 [카오스 섬의 학살] , 제리코 사망
1825 영국, 셰익스피어 연극 심취
1826 샤를ㄹ르 노디에의 그랑 세나클에 참여
1831 살롱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2 모로코 여행
보들레르 , 코티에의 찬사를 받음
야성적이고 이국적인 외모
열정적인,반항적인 제리코와 반대로 자신을 잘 통제하는 들라크루아 댄디즘 (:열정적인 감성과 말에 다듬는 외모)
왕정복고 시대에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글미으로 성공하고자 하여 살롱전 출품을 목표로 함
피에르 나르시스 게렝 [Aurore et Céphale]1810
다비드의 견제를 받아 제대로 활동을 못했음. 신고전주의 양식의 가장 반대적 성격인 색채 표현이 강하고, 극적인 묘사가 보여진다. 들라크루아의 스승
들라크루아 [단테의 조각배] 1822 , 1.82*2.46m 3개월만에 완성된 작품
실제 모델을 구할 형편이 안되어 루브르에 있는 작품을 분석하였다 (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참고)
가장 표현적인 근육질의 인체소묘가 보여짐
-미켈란젤로의 [모세]와 제리코의 [메뒤즈호의 뗏목] 참조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건너는 장면 묘사
/지옥을 빠져나가려는 격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묘사 > 물이 요동치는 물방울까지 스케치 없이 색채로 묘사. 색을 통한 분위기 창출 , 육체에 양감을 부여(루벤스 방식) “벌 받는 루벤스다”
-아카데미 규범과 다른 들라크루아의 독창적인 기법
/ 제리코와 달리 색의 표현적 가치 부각
[키오스섬의 학살] 1824 -제리코 사망년도, 색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크게 구별됨
-1823 그리스 독립전쟁, 터키의 잔혹한 진압후 키오스 섬의 대량학살> 1823년 부티에 대려으이 [그리스 전쟁에 대한 회상록] 출간
-부티에 회상록을 기초로 작업
-주제의 시사성, 거대한 스케일, 혁신적인 화면처리로 살롱의 관심을 받음
-신고전주의 양식(구조적 조화, 절제된 감성, 섬세한 마무리)와 반대되는 낭만적 작품으로 평가됨
혹-그리스인의 독립이라는 가치와 반대되는 무기력한 감정 묘사(행위의 부재)
혹-잔혹하게 진압되는 비극적인 주제와 반대되는 화려한 색채
장그로 ‘전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다’ ‘회화의 학살이다’
들라크루아의 낭만적 성향의 직접적인 표출
-터키의 지배체제에 있었던 키오스 섬에 집중
-학살 당하고 실패한 좌절된 모습을 통해 동정심유발
-현실적인 모습묘사 / 이국적 정치에 대한 관심(새로운세계의 동경심)
-터키의 기병대를 추악한 모습이 아닌 화려하고 자신감있는 모습
>들라크루아가 가진 세계관, 관점으로 해석
‘그리스인의 독립’의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쟈우르와 하산 파살의 결투 (바이런의 작품에서 다룸)
하산- 터키의 중요한 권력자 하산과 알리안이라는 노예의 베네치아 출신인 쟈우르 , 쟈우르의 복수의 내용
-틀라크루아도 여러번 작 (극적인 마상 전투)로 그려짐. 가치x 선과악x
1826, 시카고 아트 인스튜트 - 이국적인 장면을 아주 극적으로 표현, 가치보다는 철저하게 유미주의적인 작품, 그리스인과 터키인의 싸움을 주제로 감상적으로 표현
1835, 프티팔레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28
아시리아의 군주 사르다나 팔루스
-동방을 주제, 바이런의 희곡을 보고 작업, 동방을 직접 다녀오진 않았지만 영국 여행을 가며 영국의 문학을 탐독하며 동방에 대한 동경심을 가짐
-이국적인 분위기와 동방군주의 광기, 여인들과 말의 죽음의 잔혹한 광경.
-느긋한 군주의 모습은 잔혹함이 더해짐
-안정적이지 않은 구성과 복잡한 묘사지만 하나의 중심적 구도가 존재한다. 파멸을 상징하는 하강곡선. 사르다나팔루스의 시선으로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지만, 색채로 하강곡선을 강조시킴
파괴의 근원지는 사르다나팔루스의 광기,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음
- 시각적 효과를 강화시키기위해 들라크루아는 색채의 대비로 표현하였다.
‘색은 음악과 같다’(20세기 칸딘스키) 색,점,선,면/ 음표라는 기호의 멜로디로 사람을 감동시킬수 잇다. 시각적음율,감정
<—>색은 회화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형태와 형식에 있다는 신고전주의 미학과 가장 반대되는 개념을 보여준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31
-1830, 7월 혁명 - 프랑스 입헌군주제/ 7.28 폭동의 장면
-들라크루아 혁명에 대한 동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죄의식 반영
-다양계층 드러내는 장치로 복장을 사용했고 여러계층의 프랑스인 모두가 단합해서 이룬 혁명임을 보여준다.
-파격적인 인물의 자세, 화려한 색채미
-노트르담 성당- 파리배경을 상징
-상체누드의 여성 - 역사속에 남을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스 고대 조각의 모습, 비너스의 모습 >왕정을 몰락시킨 혁명적인 사건
-모자- 혁명당원들의 모자
-자유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공통적인 열망임을 이 여인을 통해 완성시켰다
루이 필림이 거금을 주고 구매해 개인 보관- 또 다른 폭동을 낳을까 두려워
들라크루아 5개월 동안 모로코 여행
[The Fanatics of Tangier]1837
[Arab horses fighting in a stabel]1837
[The Womens of Algiers]
소묘중심 화법을 거부하고 1857년 학술계 진입
-색채의 중요성 전수 - 르누아르, 고갱, 마티스
-문학적 회화작가
19세기 프랑스 혁명
1789 프랑스 대혁명
-앵그르 - 다비드의 제자로서 아카데미 화풍의 중심자 [호메로스예찬] 1827
-들라크루아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앵그르 -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해야한다/즉흥성과 무질서를 경계해야 한다 (들라크루아의 미학을 비판)
-세밀함, 엄격한 명료성
[Princesse de Broglie]
-푸생과 라파엘로를 존경
(라파엘로/푸생, ‘회화는 관념의 상징이다’ ‘형태에 의해 완성된다’<—> 티치아노/루벤스 사람의 그림에는 향기가 있다)
[베르텡의 초상화] 1832
[Le bain turc]1862
들라크루아 [쇼팽의 초상화]1838
[La Grande Odalisque] 1814
odalisque -하렘에 살고 있는 여인들/ 동방 전제군주의 야망을 보여주는 공간, 유럽남성들의 동양의 이미지, 남성, 야만적
-터번을 쓰고 있는 여성, 담뱃대
-기다리고 있는 여성의 수동성 - 나른한 자세
나른한 자세를 묘사하기 위해 인체 비율을 왜곡되게 표현
곡선미를 살리기 위해 허리를 길게 묘사하고 있다
앵그르가 가지고 있던 표현기법의 혼란,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
-전반적인 느낌은 동방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부각(인체의 균형을 깨뜨림)
1819년 아카데미에서 낭만주의, 고전주의 두 학파에게 모두 비판을 받게됨
-소묘에 있어서 완벽
보들레르 - 앵그르를 낭만주의자라고 낭만주의의 보류
-낭만주의작가라 말할 수 있는 회화> 베르텡의 초상화 - 인물의 내면세계가 얼굴, 표정으로 드러남
[Louis Francois Bertin초상화] 1832
[Martyrdom of St.Symphorien]1834
-지나치게 라파엘로 형식성에 갇혀있고 독창성이 없다 -프랑스의 화단에서 나감(낭만주의가 태동하던 시기)
신고전주의에서는 독창성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아니었지만, 낭만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주제나 표현기법에 있어 독창성(종교적, 문화적 주제)을, ‘예술을 위한 예술’ 요구.
오리엔탈리즘- 회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유행 (주로 동방은 중동을 의미)
1834년 [알제리의 여인들] 아카데미, 들라크루아
-빛을 사실적으로 표현, 강하게 표현
-프랑스 화단에서 동방에 대한 관심을 부각
들라크루아의 일기 ‘여행을 통해 정확한 표현의 강박관념을 버리게함’
그림에서의 진실이 무엇이냐, 표현주의 - 모네, 대상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를 생각하게 함
샤세리오
-앵그르의 제자였지만 앵그르가 로마로 떠나고 들라크루아의 화풍을 계승받게됨
-앵그르의 소묘기법도 보임
Theodore Chassériau, [La toilette d’Esther] 1841
화려한색채, 표현주의
Custare Moreau -샤세리오의 제자, 색을 통한 상징주의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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