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리스본행 야간열차

Pascal Mercier _ Peter Bieri .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

작가는 인생이 선명한 의식과 철학의 세계로 구현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실우베이라는 성서를 가지고 와서 요한복음의 첫 구절들을 읽었다.
 "그러니까 언어가 사람들의 빛이로군. 사물은 말로 표현되고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거군."
 실우베이라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리듬이 있어야 하지. 여기 이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레고리우스가 덧붙였다.
 "말은 시(詩)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빛을 비출 수가 있어. 변화하는 말의 빛 속에서는 같은 사물도 아주 다르게 보이지."
529

 _고통이나 외로움, 죽음처럼 사람이 견디기에 너무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과 장엄함, 행복도 우리에게는 너무 큰 개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렇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거나, 여전히 우리에 비해 너무나 위대합니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개인적인 삶의 시(詩)입니다. 시가 우리를 지탱해줄 만큼 강할까요?
539

그레고리우스는 목소리가 울리는 빈 집에서 바깥 전망과 교통 소음을 살펴보고,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는 자기 모습을 그려보았다. 
555

 _내가 사랑하는 자기기만의 대가(大家).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망과 생각들을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때도 있소. 이와 다르게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없소.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며 숨 쉬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렇게 생각하오. 우리는 서로 육체도, 말의 아주 미세한 떨림까지도 잘 알고 있소.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을 때가 많지. 특히 우리가 보는 것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의 사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클 때 더더욱 그렇소. 정말 솔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강인함이 필요하오.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 정도는 알고 있소. 이 말이 독선일 이유는 없소.
 그러나 당신이 언제나 나보다 한 단계 앞서가는 자기기만의 대가라면? 내가 당신 앞에 마주 서서 '아니, 당신 지금 날 속이고 있는 거야? 당신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해야 했을까? 내가 당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잘못을 하는지 어떻게 자각할 수 있겠소?
559




심연을 파헤치는 의식의 추리물 - 서평. 오토 에이 뵈머 [디 차이트]
 프라두의 족적을 따라 사유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결국 " 사유의 바깥쪽에는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고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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